2022년 5월 17일 화요일

염불선으로의 회귀

 염불선으로의 회귀



돌계집石女의 겁외가劫外歌와 동산수상행東山水上行을 말하고 '덕
산德山' 의 30방을 흔들며, 상相에 집착 없는 언어로 공空을 읊고
마치 우주의 주인이 다된 양 착각하여 오만을 떨었던 지난날을 생
각하면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30대 중반 서울에 올라와 상임포교사로서 불법을 포교하기 위해
법상에 앉은 지 채 2~3년도 못 되어 나의 공부禪수행 保任에 회의
를 품기 시작했습니다.

히말라야 초인超人들, 힌두교 성자요기 Ylgi들 및 티베트 밀교의
성자 미라래빠의 수행담을 접하고 법화경, 화엄경 등 대승경
전을 정독하면서 나의 선수행을 비교 점검해본 결과 중대한 발
견을 하게되었습니다.

자성을 깨치는 것은 공부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견성見性이 곧
성불成佛' 이라는 산가의 기치旗幟는 분명코 잘못됐으며, 설사 견성
하고 나서 보림을 마친다 하더라도 곧 붓다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부처님이 거룩하시고 희유하시며 거의 절
대자라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또한 인간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 아라한에 그칠 뿐
이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아라한으로서는 우주와의 계합이라는
것이 결코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실존철학의 소위 존대sein 불교의 법성法性, 선禪의 자성自性에 해당가
드러나서 머무는 건 순간일 뿐입니다. 영원히 우주와 계합을 이루
는 성불만이 완벽한 생사해탈을 보장합니다.

소위 견성에 이름으로써 저 일신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이 우상
일 뿐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말하자면, '절대적인 창조주란 없
다!' 고 선언하는 단계가 바로 견성의 경지였습니다.


이 경지에 이르면서 이 몸뚱이란 4대지수화풍로 이루어진 옷이나
집과 같은 '가짜 나假我' 라는 것과, 나我라는 것도 오온五蘊-色受想行
識으로 이루어진 인연소생의 가아假我이며 이 세상은 꿈이나 그림
자 또는 이슬과 같은 무상無常한 존재라는 사실도 발견하였습
니다.

분별하고 사량하는 것은 생각일 뿐, 마음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
습니다. 이것만 해도 크나큰 깨침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지天地 이전, 곧 부처 나기 이전의 적멸寂滅과 우주가 생
기기 이전의 면목을 깨친 이라면 당연히 불교의 연기법만이 진리
라는 것을 사자후할 것입니다.

내가 갑자기 염불선 공부로 용감하게 회귀할 수 있었던 것은 화
엄경 입법계품, 법화경 본문 팔품에서 가르친 대로 무엇보다
도 계율을 존중하며, 경전을 읽고 염불하는 수행만이 부처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토삼부경에서 수행인이 생사윤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지름길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경전 읽고 염불하는 것만이
우리가 보다 잘 살수 있는 오직 하나의 대안代案임을 확실히 보았
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나는 인도의 용수, 마명보살, 중국의 혜원 조사, 진晋의
각현, 담란, 천태지의, 선도, 도작, 영명연수 선사, 한국의 의상, 원
효스님, 서산 선사의 염불선을 크게 주목하면서 우주생명의 실상
實相을 관觀하며 보림을 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미모의 젊은 여인을 보고 마음이 설레는 자신을 발견
했습니다.

그 순간 '진여실상이라는 용광로에 무명번뇌나 억겁의 죄장 따
위가 모조리 녹아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고 주장했던 지난날의 나
의 법문을 스스로 반추하고 의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혼자 산행山行을 하던 중에 쉬어갈 만한
곳에서 선정禪定에 들었습니다. 그 선정 중에 문둥병을 심하게 앓
고 있는 남자가 들어와 한 이불 속에서 자고, 밥지어 먹고 지냈을
때, 정말 선정에 들었으면서도 알고보니 천인天人의 선정이었다
중생심의로 돌아가 역겹고 싫은 생각이 줄곧 따라붙고 있었습니다.

한 태백산의 토굴에서 보림하던 어는 여름날, 커다란 구렁이
가 내 곁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너무도 긴장하여 진땀을
흘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본래면목의 실상, 진여자성眞如自性을 철
견하고 보림한다고 해서 붓다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오백생 이전에 수행하실 때에 '가리왕' 이라는 포
악한 악인을 만나 난자당해 돌아가셨을 때에도 그에게 성내고 원
망하는 마음이 조금도 일어나지 아니하셨는데, 도대체 나는 어디
쯤 와 있단 말인고? 결국 인간 능력의 한계라는 명제와 타력他力, 곧
'부처님의 가피' 라는 주제를 두고 차츰 골똘히 생각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나는 깊은 선정에 들어서 그것을 진짜 삼매라고 오해
한 나머지 불 보살을 뵙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친견은 고사하고
지옥 천상세계도 관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윤회를 벗어난 해탈
오계解脫梧界, 곧 도솔정토나 서방극락세계도 끝내 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선승禪僧이었음에도, 이 모두가 실제로 존재할 것이
라고 믿었기 때문에 염불선으로 과감히 방향전환하였으나 특히
1970년대 당시의 한국불교에서 선수행이 강고되다 보니, 염불하
는 행자들을 무조건 외도로 몰아 배척하였기 때문에 겉으로 내색
하지 못하고 침묵 속에 정토업淨土業을 쌓았습니다.

또 하나 내가 염불선으로 방향전환을 결심한 데는, 선재동자와
같은 나의 과거 행각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마친 화엄경 입법계품의 선재동자처럼 나이와 성별, 출가
재가를 가리지 않고, 이단異端-제2의 예수라 자칭하는 어느 목사님, 부처라
고 떠받드는 어는 재가보살 그리고 전라도 토굴의 어느 도인 등을 이해하고 오
랜 세월 교유함으로써 선禪의 참구參究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칭명염불 수행법의 이론적 토대 - 성명쌍수

 칭명염불 수행법의 이론적 토대 - 성명쌍수



수행자가 칭명염불 수행법에 대한 든든한 이론적 토대를 얻기 위해
서는 성명쌍수에 대해서 이해하면 좋다. 흔히 동양 철학과 동양 수행
을 하는 수행자라면 고대 성현들로 부터 전승된 성명쌍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성명쌍수란 성(성품)과 명(생명, 삶)을 함께 공부하라는 것을 학
인에게 당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성이란 성품을 말하며, 성품은
마음의 자성을 말한다. 이는 또한 불성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명이라는 것은 우리의 목숨, 즉 생명을 말하며, 더 포괄적으로는 삶
이란 점에서 성품을 공부하는 것이 명을 공부하는 것보다 중요하게
인식될 수 있다. 그 이유는 성품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주적으
로 영원하게 존재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반면 명으로서의 삶은
시간과 공간 속에 내재한 법리와 인연법 그리고 연기사상
을 통찰 및 철견하는 것이다.

물론 반드시 성으로서의 자성을 닦는 것이 명으로서의 삶
을 이해하는 것보다 우월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래서 성과
명은 함께 닦아야 한다는 성명쌍수를 성현들은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실, 힌두의 철학 사유에서도 본질 또는 존재를 공부하는 것과 인
연 또는 관계를 공부하는 것 두 가지를 나눈다. 어느 것이 우선이고
어는 것이 차선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둘을
통해서 내면의 자성 세계로 회통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될 때 내면과 외면은 뻥 뚫려 내외명철이 된다. 이 내외명철
이 확연히 인식되어 자신의 인식 구조와 존재론적 세계가 하나가 될
때 내외의 벽은 허물어지고 완전히 허공과 같이 충만한 공을 철견
하게 된다.

인도의 쿤달리니 요가에서도 쉬바로서의 정적인 성품 의식과 샥티로
서의 동적인 육체 에너지를 이야기한다. 쉬바는 성에 해당하며 샥
티는 명에 해당한다. 성은 관조적 힘이자, 주시적 힘이자, 관찰
자로서의 힘이다. 명은 행위적 힘이자 삶의 영위자로서의 힘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불가의 팔정도에서 정견, 정사유 등은 쉬바 의식
을 도야하는 바른 길에 해당하며 정업, 정정진 등은 샥티 힘을 도야하
는 바른 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성은 우리의 마음을 의미한다면 명은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
신 구 의 작용을 의미한다. 성은 체요 명은 용인 것이
다. 21세기 과학 문명의 총아인 컴퓨터 시스템을 비유로 들면 프로그
램들 하나하나의 실체가 바로 성이요 그 프로그램의 행위 또는
작동이 바로 명인 것이다.

체와 용이 분리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처럼 성명도 불
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마음에는 안과 밖의 경계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염불선이나 위빠사나선이나 모두가 일차적으로 성을 도야하
는데 있다.

물론 큰스님의 칭명염불 수행은 성을 도야하는 것을 넘어서 부처
님의 가피와 위신력으로 불신을 얻는데 있다. 큰스님의 법 세계에
서는 성이라는 것은 작은 불씨라면 불신은 태양으로 비유할 수
있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수승한 공덕의 염불 수행법

 수승한 공덕의 염불 수행법


염불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부처님의 상호, 즉
그 모습을 마음으로 관찰 관상하면서 그 공덕을 기리는 일"
이라고 한다.

염불과 비교해서 다라니가 있는데 다라니의 사전적 의미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의 정요로서, 신비적 힘을 가진 것으로
믿어지는 주문을 뜻한다. 원어명은 dharanl라고 한다. 또한 백과
사전에 의한 설명으로는 "비교적 긴 장구로 되어 있는 주문으로
총지 능지 능차라 번역하며 불법을 마음 속에 간
직하여 잊지 않게 하는 힘이다."

다라니들 중에서 좀 더 짧은 다라니인 진언, 즉 만트라에 대
해 사전적 의미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이
나 서원을 나타내는 말로서, 불교에서 진실하여 거짓이 없는 신주
주 신주 밀주 밀언 등으로도 번역한다." 본 단원에서는 염불수행과
관련 제반 내용을 집중 조망할 것이다.

먼저, 석가모니불 칭명염불 그 효시, 즉 염불 수행의 원류를 교
학적 근거에 기초하여 논구하고자 한다.

첫째, <<잡아함경>>에 "바사닉왕이 부처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나
무여래응정등각' 하니......"라고 되어있으며 둘째, <<중일아함경>>에는
"부처님의 명호, 여래 지진등정각 선서 세간해 ..... 등 여러 가지 명
호를 부르면...., 이 공덕에 의해 두려움이 소멸되고, 신통을 얻고....
죽으면 천상에 난다."라고 되어 있다.

셋째, <<중일아함경>> <억념품>에는 "1. 거닐 때도, 2. 머무를 때도,
3. 앉아 있을 때도, 4. 누워 있을 때도, 5. 항상 어디서나 부처님을 억
념하라."고 되어있으며 넷째, <<대방편보은경>>에는 "석존의 제자 한
사람이 '나무석가모니불'을 부르게 하자, 5백 명의 도둑 신체의 고통이
제거됐다."라고 되어 있다.

다섯째로 <<여환삼마지무량인법문경>>에는 "'나무석가모니불' 부르는
것에 의해, 선근이 증장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성과가 있다"고 하
였다. 그리고 여섯째, 부처님은 <<증일아함경>>에서, 모든 비구들에게
수행의 한 법을 염불이라고 설했다. 즉,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이
르시기를 마땅히 한 법을 수행하고, 마땅히 한 법을 널리 펴라, 큰 과
보를 이루며, 모든 선이 널리 이르게 되고, 감로의 맛을 얻어 무위
처에 이르며, 문득 신통을 이루어, 모든 어지러운 생각을 제거하
여 아라한과를 얻어, 열반에 이른다. 어떤 것을 한 법이라고 하
는가? 이른바 염불이다."고 하셨다.

이는 염불하는 공덕에 의해서 무위처에 이르고 신통을 얻어
열반에 들어 갈 수 있다고 한 것은 불교의 수행 중에서도 염불이 중요
함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곱째, <<관무량수경>>에서는 "부처
님께서 위제희 부인에게 16관을 .........."이라고 전한다.

한편, 정토종의 염불 수행인 나무아니타불 칭명염불에 대해서 설명
하자면 다음과 같다. 전통적인 정토종은, 서방 극락정토가 분명하게 존
제하고 염불의 목적이 왕생 극락정토에 있음을 주장한다.

아미타불이나 서방정토 극락세계는 대승경전 전체의 1/4 정도에 해
당하는 방대한 영역에 걸쳐서 등장하고 있다. 정토사상의 발생과 <<정
토삼부경>>의 성립 연대는 불입멸 후 대승불교가 발생할 무렵
어느 대승인 학장에 의해 이루어졌으리라.

그러나 신앙의 근원은 석가모니불 제세시에서도 찾아 볼 수 있으며,
정토신앙은 인도의용수(불멸 후 6~7백년 경), 세친 보살에 의해
서 그 골격을 잡았고, 중국으로 전래되어 크게 발전하였다.

중국의 진나라 때 혜원(육경에 통달, 노장에도 밝았다), 불타발타라
후위의 담란, 수의 지자 대사, 당의 선도 화상, 도작 스님에 의해
서 염불 수행은 크게 진작되었다.

특히 도작 스님은 하루에 칠만 번씩 염불하였다. 규봉 종밀 스님은
염불법을 칭명염불, 관상(觀想)염불, 관상(觀像)염불, 실상염불로
구분하였다.

염불 수행이 선종과 결합하여 염불선이 대두되었는데 염
불선의 효시를 추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선종에서 수용하는 정토
는 내생이 아닌 지금 현세에서 도달한다는 것이고, 타력에 의한 성취
가 아니라 자력에 의한 자각이란 점을 들고 있다.

그래서 정토란 곧 자기 마음의 청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유심 정토
의 사상은, 정토의 개념을 선에서 수용하여 선정일여의 염불선을 표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초기 선종에서 정토를 일심에서 통함, 선정일여의 염불선을 언급한
것은 사조 도신스님의 <<밉도안심요방편법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고려말 나옹 혜근 선사(태고 보우와 더불어 고려말의
선품을 진작한 대선사)의 염불선을 음미해 본다.

아미타불 어느 곳에 있는가
마음에 붙들고서 간절히 잊지 않는다면
염불하는 일념은 일념마저 끊어진 무념처에 도달하여
육근문에 항상 자마금색 광명을 놓으리.

나옹 스님은 자성미타인 유심 정토를 설하고 있다.
또한 참구염불선이 있는데 이는 염불을 참구한다. 즉 지금 염불하는
자가 누구인가를 참구하는 것이다. 당대에는 서방 정토를 유심 정토로
해석해서 선과 정토가 이념적으로 통합되었고, 송대에는 법안 문익, 영
명 연수 스님이 염불선을 주창했으며, 원대에는 남송시대에 발전
한 간화선의 영향을 받아 염불과 화두 공안이 방법적으로 융합되어 임
제종의 몽산 덕이, 중본 명본 스님 등이 있었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120~123

염불수행-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공부

 염불수행-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공부



나는 분명히 말합니다!
최초 불이시요, 남섬부주 교주이시고 삼천대천세계 총교주이시
며, '붓다 중의 붓다' 이신 불세존 석가모니불佛께서 일러주신 수
행법은 바로 염불선입니다.

그리고 시방의 모든 붓다들께서도 염불공부할 것을 간절히 권하
고 계십니다. 염불선이 가장 휼륭한 수행법이라는 증거입니다. 어
느 아라한이나 정토보살위의 성인들이 가르쳐 준 게 아니라, '붓
다 중 붓다' 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수행법이기에 염
불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위빠사나 관법선도 2500녅 넌 부처님께
서 가르쳐 주신 공부이기 때문에 휼륭한 수행법입니다.

염불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하고 부르는 것이요, '관
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해도 좋습니다. 의상대사는 관세음보살을
스승으로 삼아 정토왕생을 발원하고 '관음염불' 에 매진한 분이었
습니다. '지장보살, 지방보살' 해도 좋습니다. '석가모니불, 석가
모니불' 하면 더욱 좋습니다. 이것을 칭명稱名염불이라고 합니다.

일심불란으로 집지명호 할 수만 있다면 윤회를 벗어나 극락정토
까지도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信,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願, 그
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염불선行을 해 나가야 합니다.

<<관무량수경>> 에는 지성심, 심심深心, 회향발원심을 갖추면 극락
에 왕생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심심이란 믿는 마음이 철기
등 되어 널리 공덕을 닦거나 즐겁게 선법을 쌓는 것입니다. 널리
공덕을 지으면서 불호佛號를 염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왕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은 이렇듯 쉽지만 실제는 비범한 수행이 아니고서는
왕생하기 어렵습니다. <<아미타경經>> 에서 이르길, "1일에서 7일 일
심불란 칭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과연 보살이 아니면 왕생할 수 없습니다. 선방에서 공
부해 본 수행승이라면 생각이라는 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
난다는 것을 잘 압니다. 아라한을 뛰어넘은 보살이 아니고는, 생각
이란 놈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참선이나 염불을 하다보면 생각은 곧잘 마실마음을 갑니다. 일념
一念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염불 일념을 1일에서
7일간 지속할 수 있으면, 즉 염불선이 되는 염불행자라면 설사 오
역죄를 범한 악인이라도 정토에 왕생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
죄를 지은 자가 일념이 되기란 지극히 어렵습니다.

얼마 전 서울공대를 졸업해 일류 재벌기업의 간부로 있다가 명
예퇴직한 어느 불자님의 조상을 천도해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佛' 을 부르고 있는 가운데 아니타부처님께서 현
신햐셔서, 그 천도재에 참석했던 재자齋者의 큰 아드님을 가리키며
"이 애는 5하늘에서 왔느니라. 전생에 지성으로 염불공부를 했으
니, 잘 지도해주라" 고 필자에게 부촉하신 바 있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염불하고 살았거나, 또 임종 무렵 왕생경계가 나
타났다 해서 그 사람이 모두 정토에 왕생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속
단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하늘 천상만 해도 54층여섯 하늘로 나눔이 있고 그 위
에 윤회를 벗어난 아라한 성자의 하늘 곧 성중하늘이 또 27층품이
있으며, 성중하늘 위가 도솔정토 도솔정토 위가 바로 보살이 가는
서방극락세계라고 하신 말씀을 상기하십시오.

우리 인생이 설사 대과없이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살았다 해도 6
하늘, 5하늘에 가기도 어려운데 염불공부만으로 극락에 쉽게 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 시큰둥해 하는 불자들이 있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염불선이 되어야 삼매에 든다

 염불선이 되어야 삼매에 든다


경전 읽고 염불하는 나의 염불선을 좀더 자세히 소개하겠습니
다. 아미타불 염불공부를 중심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먼저 정토삼부경 중 하나를 선택해서 봉독한 후 벽을 향해 단정
히 반가부좌한 채로 두 눈을 벽의 한 점을 응시한 채 염불선을 시
작합니다. 결코 눈을 깜박거리지 마시고 그 한 점에 두 눈을 고정
해야 합니다. 기도 정근 중에 자꾸 마실마을 가는 놈이 있어서 공부
를 일념으로 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생각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공부의 요체입니다.

하나로 모으려면 차라리 확실하게 둘로 나눠주는 것이 좋습니
다. 망상 피우는 그 놈이 바로 '나'입니다. 그 놈으로 하여금 망상
하지 못하게, 마실마을가지 못 하게 과제를 하나 내주십시오.

내 앞에 아미타부처님께서 와 계신다 생각하고, 마음속에서 큰
소리로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다짐을 하도록 시키십시오. 또 부처
님 앞에서 지난 날 못된 짓 한 것을 경건하게 참회하게 하고 극락
왕생을 발원하도록 말을 시키십시오. 입으로는 '나무아미타불'
정근한 채 두 눈은 앞 벽의 한 점을 응시하고, 귀의 참회 발원을
잘 해내도록 합니다. 이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나 힘써 하면
됩니다.

자유자재로 마음속의 내가 독자적으로 말을 잘 하는 정도가 되
면 이제 생각을 하나로 모아 한 점 속을 뚫어 가십시오. 염불삼매
로 들러갑니다.

부처님의 신상광명을 관하면서, 입으로는 고성으로 힘차게 칭명
해 들어가는 염불공부도 좋습니다. 모든 붓다는 몸이 빛으로 돼 있
어서, 현신現身할 때에는 모든 빛을 거둔 상태지만 여전히 안팎이
드러난 청정광명을 방사하게 됩니다. 정수리, 미간과 모든 털구멍
에서 밝고 투명한 빛을 방사합니다. '석가모니불' 염불행자라면
석굴암의 불상을 마음속으로 그려가면서 방사하는 광명을 마음숙
으로 지어갑시다. 그런 부처님 상을 관하면서 칭명염불합시다. 세
존석가모니佛 염불하는 자는 반드시 <<금강경>>을 봉독한 후
염불하는 겁니다.

대승경전 전체의 3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정토삼부경 <<대집
경>>등 200여 경전에서 염불을 권하고 있습니다. 특히 문수보살은
<<문수반야경>>, <<문수사리발원경>>등에서 극락왕생을 발원토록 하
셨고, 보현보살께서는 <<화엄경>> <입법계품> 마지막 부분에서 선
재동자 등에게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날 것을 권하셨습니다. 대
세지보살도 <<능엄경>>에서 염불하는 중생을 인도하여 삼마디을 얻
어 서방극락세계에 나게 하시고, 관음 지장보살께서도 물론 인
연중생을 극락정토로 인도하시는 일을 교화의 목표로 삼고 계십
니다.

인도의 마명 용수 무착 세친, 중국의 혜원 선도 천태
철양 영명, 신라의 원효 의상 서산 기화, 일본의 법연 신란
등 대선사들을 포함한 당대의 큰스님들도 염불수행을 최선의 공
부법으로 권장하고 고취시켰습니다. 물론 자기들 스스로도 정토
업염불공부에 매진한 분들이었습니다. 염불선은 보살지까지 뛰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수행법임을 다시 천명하는 바입니다.


출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